unvanquished and unyielding


이수명 아포리즘

옷을 턴다. 항상 새것 같은 옷을 입는다. 항상 새것 같은 공기 아래 새것 같은 곰팡이가 피고

새것 같은 눈물 천천히 눈에 고인다. 오늘은 상하지 않은 점심을 먹는다.

겨울은 없고 겨울 헤엄도 없는

오후에는 칠이 벗겨진 의자 위에 앉는다.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빛을 창에서 책꽂이로 옮겼다가 식탁으로 옮겼다가 닫으려던 문 아래 잠시 세워둔다. 기분이 자꾸 바뀌어서 작성하려고 했던 명단이 또 바뀌어서 내가 불청객이 되고 나서야 모든 기분이 사라진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올 거다.

중계방송을 듣는 일이 가장 즐겁다. 아나운서의 흥분이 볼륨을 높이고 그래도 금방 날이 어두워진다. 창밖으로 곧 어둠이 가득해진다.

나는 어둠 속에 뚫린 커다란 구멍처럼 보인다.

이수명, <항상 새것 같은>, <<물류창고>>(문학과지성사, 2018)

덧글

댓글 입력 영역